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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피 두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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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와이프가 집에 데려온 열대어 구피 두마리가 생각난다.

열대어에 대한 지식도 없으면서 무작정 친구가 공짜로 나눠준다고 덜컥 받아왔더라.


나는 산 생물을 책임지고 키운다는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와이프의 그런 행동이 처음부터 탐탁치 않았으나 이왕 데려온거 잘 키워보라고 말하고 신경을 끊으려고 했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렇게 쉬이 흘러가질 않는 법이다.

와이프는 데려오고 자그마한 어항 하나에 그 둘을 넣어두고는 그걸로 땡 해버렸다.

결국 인터넷을 뒤져 열대어를 키우는 방법을 검색하고 먹이를 사오고 장치를 사오는 것은 내 일이 되었다.


사실 당시 와이프는 직장 내 문제, 친정에 남동생과 부모간의 갈등으로 다소 마음의 여유가 없던 상태기도 했다.

마음이 그러니 아이를 가지는 것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고, 이래저래 부부가 서로 나름 노력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대충 이 녀석들이 살 구색만 갖춰놓고 밥 챙겨 주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정말이지 사람 마음이라는게 우습다. 정이라는 것은 무섭다.

책임지기 귀찮아서 어디 주변에 물고기 키우는 사람한테 줘버릴까 생각하던 내가

한두달이 지나자 언제부턴가 집에 돌아오면 이 두 녀석들에게 안부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말을 건네고 있었다.


와이프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신기해했다. 처음보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내가 반성할 부분이기도 하다.

구피 두마리가 가져준 변화는 컸다.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즐거운 대화거리가 하나 생긴 우리 부부는 뭔가 여유가 생겼다. 

소통이 원활해졌다. 가령 예전같으면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질 일이 생겨도 서로 솔직하게 말하고 웃어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 좋은 일이 구피들에게는 불행이 되었다.

와이프가 임신을 하고, 내가 잠시 1박 2일로 출장을 간 날이었다. 청소를 해주시겠다고 장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

그렇게 청소를 하시던 장모님이 설거지를 위해 뜨거운 물로 온도를 맞춰놓고선 그걸 까먹고 어항에다가 부어버리신거다.

와이프가 깜짝 놀라 다시 찬 물을 부어 온도를 맞추어주었지만 이미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난 후 였다.


한마리는 바로 죽었고, 한마리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돌아와서야 이 사실을 듣고 놀라 살펴보니 

살아남은 한 녀석도 헤엄치다가도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먹이도 못먹는게 이미 살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지만 자기가 그런 것도 아닌데 정말 미안해하는 아내와 

내 안색을 살피며 쩔쩔매는 장모님을 보고 차마 표정조차 내 마음대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일단 괜찮다, 이런 일로 왜 신경을 쓰시냐 괜찮다, 와주셔서 도와주시고 고생하시고 감사하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솔직히 속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한데 섞여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정말 열심히 표정관리하면서 어쩔 수 없죠 뭐. 이러는데... 그러는 동안 남은 한녀석도 결국 죽어서 둥둥 떠올랐다.


차라리 내가 없는 틈에 둘 다 가버렸으면 실감이라도 안났을텐데.

보는 앞에서 그렇게 안간힘을 쓰다 가버리니 참... 아무 말이 안나왔다.


아내는 속상해 할 내 마음을 예상했는지 이미 어제 죽은 녀석을 화장지에 곱게 싸놓았었다.

그렇게 두 마리를 아파트 정원 구석 한켠을 깊게 파서 묻어주었다. 참 너무 가벼운 이별이었다.

가슴 한켠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 온 몸을 휘감았다. 거기에 취해 있을 시간도 제대로 없었다.

장모님과 아내 생각에 다시 금방 올라가야만 했다. 명복을 비는 말과 자학과 후회를 그득 안고 다시 올라갔다.


그 후 한동안 텅 빈 어항을 지켜보곤 했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놓아두었는데, 아내가 다시 열대어를 키워볼까 운을 떼길래

괜찮다고 말하고 열심히 말을 돌리고 화제를 바꾼 후에 그냥 출근하는 길에 버렸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딸이 태어나고 자라고 이제 유치원에 다니는 나이가 되었다.

가끔 아내나 딸은 반려동물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강아지나 고양이나.

그러나 나는 아직도 반려동물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소리없이 뻐끔거리고 뾸뾸 헤엄치는 그 자그마한 물고기 두마리가 내 가슴에 그렇게 큰 자리를 차지할 줄은 몰랐었다.


문득, 그 때의 그 감정이 떠올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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